내가 바라본 풍경

남연군묘와 상가리 미륵불

돌배꽃향기 2011. 4. 23. 22:58

      상가리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남연군 묘를 다시한번 둘러 보았다. (예전부터 잘알고 있었지만 사진을 찍기는 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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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 저수지를 지나면 바로 상가리 동네를 가는 길이다. 길 바로 좌측엔 덕산 도립공원 주차장이 있으며 앞쪽 우측엔 보덕사 가 있다.

 

    상가리 다리를 건너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남연군 묘는 우측길이고 좌측으로 가면 고풍 저수지를 지나 서산군 운산면이 나온다.

 

   공원 관리소 앞,  (위쪽은 상가리 저수지)

 

 

 

   묘비가 보이는 곳이  남연군 묘, 

 

   예산 가야사지 설명문,

 

 

 

 

 

 남연군(南延君)은 인조의 아들인 인평대군(麟平大君)의 6세손(世孫) 병원(秉源)의 둘째 아들이자 고조 광무제의 생부(生父)인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아버지이다.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서자 은신군(恩信君) 진(禛)은 숙종의 여섯째 아들 연령군(延齡君)의

 손자로 입양되었고, 은신군이 후사가 없어 남연군이 그의 양자가 되었다.

 1815년(순조 15) 수원관(守園官), 1821년 수릉관(守陵官) 등을 지냈다. 1829년(순조 29) 영조와 진종(眞宗) 및 정조의 어필을 간행하여

 보존할 것을 상소하였고, 1834년에는 공조 판서 김유근 등과 함께 종척집사(宗戚執事)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남연군의 묘는 경기도 연천에 있었으나 흥선대원군이 충청도 덕산(德山:예산)으로 이장하였다.

 1868년 독일의 상인 E.J.오페르트에 의하여 묘가 도굴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쇄국정책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 IPF국제방송

    남연군 묘,

 

   뒤로 식수원으로 쓰이는 상가리 저수지가 보이며 높은 산은 가야산이다,

 

    남연군묘를 지키는 동물상인데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아들을 낳으려고 양쪽 두개의 코를 잘라갔다.

 

   귀중한 문화 유산을 코를 베어 가다니.... 과연 코를 베어간 여인은 아들을 낳았을까?  

 

    남은들 상여,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남연군묘 바로 옆에 있는데 진품이 아니고 복제품이라고...)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李球)의 시신을 장지까지 운반하던 기구로 행상, 영여, 온량거라고도 한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남연군은 순조 22년(1822)에 죽었는데 당시의 가야사 터(현재, 예산군 상가리에 있는 보덕사터)가 왕손을

낳게 하는 명당이라는 풍수설에 의하여, 흥선대원군이 헌종 6년(1840)에 가야사를 불태우고 아버지의 묘를 이장한 것이라 한다.

 이장을 하고 난 그 다음 해에 둘째 아들 이재황(李載晃)-후일, 고종으로 즉위함-을 낳았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상여의 제작은 1840년과 고종의 탄생년인 1852년 사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상여는 그 자체의 가치보다도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상여라는 점에서 유물로서 가치가 있다.

 

 

    묘지 위쪽에서 바라본 풍경,    덕산 방향이다

 

   상가리 저수지,    20여년 전 우리 가족 셋이서 어느 여름날, 이곳 계곡에 놀러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막 저수지 둑을 막는 공사를...

 

      상가리 미륵불,

상가리 미륵불은 문화재자료 제182호로 남연군 묘에서 동북쪽으로 150m 떨어진 곳에 있는 골짜기에 북향하고 있는 불상이다.

 원래는 가야사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흥선대원군이 가야사를 없애고 남연군 묘를 쓰자 반대편으로 등을 돌렸다는 설도 있고,

 북쪽 계곡으로부터 쳐들어오는 병마를 물리치기 위해 북향을 하고 있다는 설도 전해진다.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의 중앙에 화불이 장식된 것으로 보아 실제로는 관세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이마에는 백호가 있고, 눈은 반쯤 뜨고 있다.
코는 보수한 흔적이 있는데, 미륵불의 코를 떼어가면 아기를 못갖는 아낙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코를 떼어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가리쪽 가야산 도립공원에 사진에 보이는 시설들이 여러개가 있어서 호기심에 뚜껑을 열어보았는데 토종벌통이 아닌가 싶다. 

 

      해가 저물어 부랴 부랴 서둘러 귀경을 하는데 서산 백제의 미소 옆에 멋진 소나무가 보이기에 마지막으로 담은후

  악셀레타를 밟았다.